
2024년 7월 19일, 대한민국 가상자산 시장에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되었습니다.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의 본격 시행으로 그동안 무법지대로 여겨졌던 가상자산 시장이 최소한의 규제 체계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이 법률은 이용자 예치금 보호와 불공정거래행위 금지 등 가상자산 사업자의 기본 의무를 명확히 규정하여 시장의 투명성과 건전성을 제고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가상자산 산업의 발행과 유통에 관한 포괄적 규율이 부재한 상황에서, 보다 체계적인 '기본법'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한국 사회는 캐시리스 사회로의 급속한 전환을 경험하고 있으며, 금융의 디지털 혁신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은행의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시중은행들의 예금 토큰, 그리고 국회에서 논의 중인 디지털자산 기본법은 대한민국 디지털 금융의 미래를 결정할 핵심 축으로 부상했습니다.
얼핏 유사해 보이는 이 세 가지 개념은 각기 다른 주체와 목표를 지니고 있으며, 상생과 충돌을 반복하며 새로운 금융 질서를 형성해가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CBDC와 예금 토큰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이들을 포괄하는 디지털자산 기본법의 역할을 심층 분석하고자 합니다.
CBDC란 무엇인가
CBDC는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법정화폐입니다. 현재 유통되는 지폐와 동전이 중앙은행의 부채로 기록되는 것처럼, CBDC 역시 한국은행의 부채로 계상됩니다. 이는 CBDC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가치 변동이 없는 절대적 안정성을 의미하며, 민간 발행 디지털 화폐가 보유할 수 없는 '무위험성'이라는 본질적 신뢰성을 제공합니다.
한국은행은 CBDC를 두 가지 형태로 연구해왔습니다.
2025년 CBDC 추진 현황: 잠정 중단
2025년 중반, 한국은행의 CBDC 2차 테스트는 결국 잠정 중단되었습니다. 이는 민간 부문의 활발한 움직임과 시중은행들의 현실적 고민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당초 예정되었던 예금 토큰 실거래 테스트(2025년 4~6월)는 진행되었으나, CBDC 사업의 전반적 방향성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금융기관들은 약 24억 원 규모의 사업 예산으로 추진되는 CBDC 테스트에 상당한 비용을 투자하면서도, 상용화 로드맵의 불투명성이라는 실질적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한국은행은 CBDC 사업을 조급하게 추진하기보다 민간 부문의 디지털 혁신 동향을 관찰하며 전략을 재수립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예금 토큰의 정의
예금 토큰은 시중은행이 고객 예금을 블록체인상에서 토큰화한 것으로, 기존 은행 예금과 동일하게 1:1로 원화 가치에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의 일종입니다. CBDC와의 근본적 차이는 발행 주체가 중앙은행이 아닌 각 상업은행이라는 점입니다.
블록체인 기술의 활용
예금 토큰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여 '스마트 컨트랙트' 기능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결제가 실행되는 등 금융 거래를 자동화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 핵심 장점입니다.
CBDC와의 시너지 모델
예금 토큰은 CBDC와 연계될 때 가장 효과적인 모델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CBDC가 화폐 시스템의 백본(Backbone) 역할을 담당한다면, 예금 토큰은 그 위에서 작동하는 '결제 애플리케이션' 역할을 수행하며 소비자의 실생활 결제를 담당하는 구조입니다.
2025년 예금 토큰 추진 현황: 민간 주도 가속화
한국은행의 CBDC 테스트가 잠정 중단되었음에도 예금 토큰 논의는 오히려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2025년 4~6월 진행된 테스트에서는 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농협은행 등이 참여하여 예금 토큰의 오프라인 및 온라인 사용성을 검증했습니다.
참여 은행들은 하나로마트, 세븐일레븐, 이디야커피 등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쇼핑몰에서 예금 토큰을 사용할 수 있도록 협력 관계를 구축했습니다. CBDC 사업에 대한 부담이 커지자, 은행들은 자체적으로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예금 토큰 사업에 더욱 집중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디지털자산 기본법의 필요성
디지털자산 기본법은 디지털자산 시장 전반을 포괄적으로 규율하고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기본 법안입니다.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이 불공정거래 규제와 이용자 자산 보호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기본법은 예금 토큰을 포함한 모든 디지털자산의 법적 정의를 명확히 하고 각 종류에 따라 진입 규제 및 행위 규제를 차등 적용합니다.
주요 규율 내용
이 법안은 발행 및 유통 절차, 공시 의무, 불공정거래행위 금지 등을 포괄적으로 규율함으로써 규제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관련 사업에 대한 법적 근거를 제공합니다. 이는 단편적 규제만 존재했던 기존 틀에서 벗어나 제도권 내 실질적 감독 체계를 구축하는 의미 있는 시도입니다.
2025년 디지털자산 기본법 추진 현황: 입법 가시화
2025년 6월 10일, 민병덕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디지털자산 기본법안'을 대표 발의하며 본격적인 법제화의 시동이 걸렸습니다. 이 법안은 이르면 2025년 하반기 내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9월 24일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TF)'를 발족시키며 연내 가상자산 관련 법률을 일괄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디지털자산 기본법은 단순한 법안 논의를 넘어 국가적 의제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 법이 제정되면 예금 토큰 발행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고,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도 단계적으로 허용될 전망입니다.
한국은행이 추진한 '프로젝트 한강'의 궁극적 목표는 CBDC와 예금 토큰의 유기적 협력입니다. 한국은행의 CBDC가 은행 간 결제 및 유동성 관리를 위한 '디지털 통화' 역할을 수행하면, 시중은행들은 이를 기반으로 고객 예금을 토큰화한 예금 토큰을 발행하여 소비자들이 일상생활에서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입니다.
이 모델은 중앙은행이 화폐 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민간 은행들이 경쟁을 통해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균형잡힌 접근법입니다.
그러나 2025년 중반, 한국은행의 CBDC 2차 테스트가 잠정 중단되면서 상생 모델은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민간 주도 스테이블코인의 부상
가장 큰 원인은 민간의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논의가 활발해졌기 때문입니다. 시중은행들은 CBDC 테스트에 상당한 비용을 투자하면서도 상용화 로드맵의 불투명성이라는 현실적 고민에 직면했습니다.
반면, 은행들이 직접 발행할 수 있는 예금 토큰은 자체적으로 새로운 금융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인 대안으로 부상했습니다. 결국 한국은행의 CBDC 없이도 민간 주도의 디지털 금융 시스템이 충분히 발전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한국은행도 사업을 조급하게 추진하기보다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된 후 재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정부와 민간이 디지털 화폐의 주도권을 두고 경쟁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이러한 논의에서 주목할 점은 시중은행들이 발행을 논의하는 예금 토큰이 이더리움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더리움 기반 토큰 표준
이더리움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블록체인 플랫폼 중 하나로, '스마트 컨트랙트' 기능을 통해 다양한 금융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합니다. 한국의 시중은행들이 논의 중인 예금 토큰 역시 이더리움의 토큰 표준(ERC-20)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주요 방법으로 고려되고 있습니다.
프로그래밍 가능한 화폐
이더리움 기반의 예금 토큰은 단순한 가치 저장 수단을 넘어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프로그래밍 가능한 화폐가 됩니다. 예를 들어:
이더리움 네트워크는 수많은 dApp과 금융 서비스가 연결되어 있어, 예금 토큰이 다양한 금융 생태계와 연동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디지털자산 기본법은 시장 질서를 확립하는 '조정자' 역할을 수행합니다.
규제 사각지대 해소
이 법안이 없다면 각 은행이 자율적으로 예금 토큰을 발행하면서 규제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이는 금융 시스템의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본법은 예금 토큰을 '자산연동형 디지털자산'으로 규정하고, 발행자에게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강제합니다:
시장 예측 가능성 제고
이는 CBDC와 예금 토큰이 혼재하는 상황에서 모든 디지털 화폐가 통용될 수 있는 '최상위 규칙'을 제시함으로써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이용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안정적 생태계 조성에 기여합니다.
한국의 디지털 금융은 중앙은행의 CBDC, 민간 은행의 예금 토큰, 그리고 디지털자산 기본법이라는 세 축 위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단기 전망
한국은행은 당분간 CBDC 사업을 보류하고 민간의 동향을 관찰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금융 시스템의 근본적 안정성을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의 필요성이 다시 논의될 것입니다.
중기 전망
은행들은 예금 토큰을 통해 금융 서비스를 혁신하며 디지털 결제 생태계를 확장해 나갈 것입니다. 이더리움 등 글로벌 블록체인 플랫폼과의 연계를 통해 국경을 넘는 금융 서비스의 가능성도 열릴 것으로 전망됩니다.
장기 전망
이 모든 논의와 경쟁을 아우르는 디지털자산 기본법은 단순히 가상자산 규제를 넘어, 화폐의 주권과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둘러싼 거대한 사회적·경제적 논쟁의 방향을 제시할 것입니다.
성공의 열쇠
앞으로 세 축 간의 역할 분담과 협력이 한국 디지털 금융의 성공적인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중앙은행의 통화 주권, 민간의 혁신 동력, 그리고 법제도의 안정성이라는 삼각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참고 자료
※ 본 글은 2025년 10월 기준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정책 및 법안은 향후 변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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